당신이 클라우제비츠에 대해 아는 것은 모두 틀렸다. Military

당신이 클라우제비츠에 대해 아는 것은 모두 틀렸다.

 

클라우제비츠에 대한 잘못된 번역이 우리의 전쟁에 대한 사고에 지속적인 충격을 미치고 있다.

-James R. Holmes


마크 트웨인이 말했듯이, 우리를 곤란에 처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것 때문입니다. 실패한 군사적 모험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 중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예를 들어, 해군에서는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이 지휘관들에게 결코 함대를 분할하지 말라고가르친 것은 상식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알고 보면 역사가들이 마한을 인용하는 다른 역사가들을 인용한 것이 그 효과를 냈습니다. 시간에 지남에 따라 인용-실상은 해군력을 집중하는 그의 아이디어에 관하여 누군가의 편집된 버전-은 진정성과 권위의 분위기를 얻었습니다.그 어설픈 기원에도 불구하고결코 함대를 분할하지 말라는 자명한 이치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마한의 진짜 아이디어를 익사시켰습니다.

 

이것은 오래 전 사망한 해양 전략가의 명성을 구출하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결함이 있거나 낡은 아이디어는 현실 세계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것은 garbage-in/garbage-out 입력한 것이 쓰레기라면, 출력도 쓰레기가 된다효과를 낳으며, 전략적 노력을 위험에 처하게 합니다. 마한으로부터 출처가 의심스러운 격언 하나에 국한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전략의 그랜드 마스터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속이라고 정의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본래의 독일어를 읽으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은 단순히 다른 수단과 함께 하는또는 다른 수단을 추가한
정책의 연속에 불과하다. 전쟁론이나 그의 노트 어디에도 다른 수단에 의해라고 쓴 대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잘못된 인용은 죽지 않습니다.

 

에 의해by”, “과 함께with”는 무슨 상관입니까? , 어떤 학생이나 전쟁의 수행자도 그래야 합니다. 4글자의 단어를 2글자로 대체하는 것은 서구인의 전쟁에 대한 이해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클라우제비츠가 가르치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전쟁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그리고 우리가 염두에 두고있는 특정 전쟁에 대해서도-치국책의 가장 우선적이며, 가장 근본적이자, 가장 중요한 행위를 구성합니다. 기본이 잘못되면 암울한 결과가 뒤따릅니다.

 

먼저 잘못 인용된 구절을 봅시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속에 불과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교전자 간에 외교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상호작용이 중단될 때 전투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해공군이 상대방을 두들겨 팰 때, 정치가들은 비폭력적 정책 수단을 저 편으로 치워놓는 것입니다. 전쟁 시에는 폭력적인 힘이 군사 지휘관과 그들의 정치적 감독자들이 전략적,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는 수단입니다. 교전자들은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과 같은 것을 가로지름으로써, 일상적인 평화 시의 정치로부터 폭력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지배되는 어둠의 영역으로 떠나갑니다.

 

이러한 해석은 클라우제비츠가 두뇌에 전달하고자 한 개념으로 변신합니다. 이제 적절한 번역을 숙고합시다. 다른 수단과 함께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외교적, 경제적, 홍보 수단의 혼성에 새로운 수단-군대-을 추가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외교적, 경제적, 홍보 수단을 버리고 검을 뽑아 드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독특한 군사적 논리 아래 수행되지만, 정책의 논리는 여전히 전투가 발생한 후에도 책임자로 남아있습니다. 이 클라우제비츠의 견해에서는 전략적 경쟁은 평화시 외교로부터 무력 충돌로 가는 연속 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간격은 흐릿해질 수 있습니다.

 

드러난 바와 같이 겉으로 보기에 사소한 단어 선택은 큰 문제입니다.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말이 이런 식으로 오해될 수 있을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가 무기들의 폭력적인 충돌 중에도 외교적 협상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전쟁이 다른 수단을 추가한, 정치적 소통의 연속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다른 수단을 추가하여문구를 사용한다. 왜냐면 우리는 전쟁 그 자체가 정치적 소통을 중단시키거나 뭔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동원하는 수단이 무엇이든, 소통은 계속된다.>

 

어디서 전쟁론에 대한 오해가 발생했습니까? 부분적으로 고전적인 논문 자체입니다. 또는 좀더 정확하게는, 번역자들입니다. 표준적인 영어 번역은 Peter Paret Michael Howard 덕분에 1976년에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침착하게 수행했지만, 완벽한 책이란 없습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디서부터 ParetHoward가 길을 잘못 들어섰습니까? 진상을 추적 해봅시다. 첫째, 그들은 전쟁론의 텍스트에서 다른 수단에 의하여를 단 한번 사용했고, 단 하나의 책의 단 한 챕터의 한 섹션의 타이틀에서만 사용했습니다. 구체적으로 Paret Howard는 제1, 1, 24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속에 불과하다이것이 그들이 Der Krieg ist eine bloße Fortsetzung der Politikmit anderen Mitteln를 영어로 번역한 방식입니다. 제대로 번역하면, 타이틀은 전쟁은 다른 수단과 함께 수행되는 정책의 연속에 불과하다” .“by”가 아니라 “with”입니다. 독일어에서는 모호한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번역자 혹은 그 출판업자가 이 부분을 실수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클라우제비츠의 논평에서 그들의 방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서문(27-44)을예로 들면, Howard는 잘못된 표현을 가져옵니다. 그는 1827 7월 클라우제비츠가 쓴 서두의 주석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69-70쪽에 다시 인쇄된 그 주석에서는, 클라우제비츠는그의 작품을 개정할 계획을 털어놓습니다. 69쪽에서 그는 전쟁은 다른 수단과 함께 수행되는 정책의 연속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절대적으로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수단과 함께의 워딩을 주의합시다. 하지만 그의 에세이에서 하워드는 같은 구절을 역시 with 대신 by 로 대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원래의 정확한 69쪽의 버전을 독자에게 언급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하워드 자신이 전쟁론을 잘못 인용하는 것이 어떻게 전략적 사고를 기형으로 변형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전간기의 이론가 Liddel Hart는 이성적 통제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폭력인 절대 전쟁의 교리에 대해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 클라우제비츠를 어떻게 비난하는지를 얘기합니다. 그리고 리델 하트는 그 구절을 우리가 클라우제비츠의 불성실의 증거로써 해부하도록 제시합니다. 그의 에세이 40쪽에서 하워드는 절대 전쟁의 교리의 소스였다면서 리델 하트를 인용하고, 그 이론을 끝장내기 위해 싸우기 위해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국가 정책의 연속이라는 주장으로 시작하고 정책을 전략의 노예로 만든다고 끝을 맺습니다.

 

하워드는 클라우제비츠의 작품에 대한 왜곡되고 부정확하고 부당한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리델 하트를 이용했습니다. 리델 하트는 또한 전쟁론에 대한 잘못된 독해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주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마이클 경의 에러는 아닙니까? 오컴의 면도날은 진실을 색출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제공합니다. 아마도 하워드의 잘못은 오타 이상의 유죄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여러 번 듣는다면 다른 수단에 의하여를 반복해서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자명한 이치는 당신의 손가락에서 페이지로 미끄러집니다.아니면 질투에 불타는 카피 편집자가 그가 알았던 것-마크 트웨인의 감각으로는 올바른 워딩-으로 인용을 바꿨을 수도 있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나 자신도 한번 이상 편집자로부터 잘못된 편집을 거절한 적이 있고 아마 한 두 개는 놓쳤을 것입니다. 같은 일이 하워드에게도 일어났을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전쟁론에 대한 논평이 그토록 지속적으로 그 지점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

 

그 구절은 Bernard Brodie의 완결 부분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여전히 클라우제비츠의 1827년 주석을 잘못 인용하고 있습니다. 645쪽에서는 Brodie는 제1, 1, 24절의 잘못 번역된 타이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705 Brodie의 논평에서 그 구절이 똑같은 방식으로 난도질됩니다.

 

그래서 Naval Diplomat 지는 핀의 머리 위에서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춤출 수 있는지 고민하는 중세의 신학자들처럼 게으른 추측에 빠져듭니까? 전쟁의 실행자와 학자들이 클라우제비츠의 세계관을 잘못 구성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회성 문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나는 정부의 홀에서, 언론에서, 군사 학교에서조차 잘못된 인용이 정확한 인용을 능가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별로 고무적이지 않습니다.

 

자명한 이치와 싸우는 것은 전략적 아이디어의 좀비와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이론을 가르치는 우리들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뇌 속의 이 좀비를 쏘아버립시다.

 

 

 

-글쓴이의 주장에 따르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표현은 사실이 아니며, 올바른 어구는 <전쟁은 다른 수단을 추가한 정책의 연속>이라는것입니다.


 -현재 널리 알려진 해석대로라면 평화 시의 경제적, 외교적 상호작용은 전쟁 시에는 무용지물이므로 마땅히 중단되어야 하고, 오로지 무력의 사용만이 전쟁의 수행과 관계가 있습니다.

 

-반면 클라우제비츠의 의도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 따르면 전쟁 중에도 교전 당사자 간의 정치적/외교적 소통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쟁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의외로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됩니다.

 

-더 간단히 요약하면, 한 번역자의 일견 사소해 보이는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 대가로, 한 사회의 전쟁관 자체가 잘못될 수 있고, 전쟁의 수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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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대공 2014/12/21 21:42 #

    제 경우는 정책의 수단중 하나라고 이해했는데 다행히도 오역보다는 의도에 가까운것 같네요
  • 골든 리트리버 2014/12/21 22:16 #

    전쟁이 정책의 수단 중 하나라는 이해는 with이든 by이든 마찬가지이므로 어차피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단지 다른 정책 수단과 전쟁 간의 상호 배타성의 차원입니다.

    다행히 대개는 그 부분 까지 파고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 앨런비 2014/12/21 21:56 #

    Der Krieg ist eine bloße Fortsetzung der Politik mit anderen Mitteln을 번역한다면 한국어로는 by와 비슷하게 번역할 수 있는 구석이 보이는데, 영어는 by로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디. mit을 by로 번역을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닌데 사실상 mit은 with
  • 골든 리트리버 2014/12/21 22:17 #

    ㅇㅇ
  • 누군가의친구 2014/12/22 00:08 #

    사실 클라우제비츠가 한번 갈아엎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교정하는 중에 사망한게 비극.(...)
    그나마 생전에 남긴 것들이 있어 어찌어찌 교정하여 나오긴 했지만 역시 생전에 교정을 끝냈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 골든 리트리버 2014/12/22 01:29 #

    http://en.wikipedia.org/wiki/Carl_von_Clausewitz
    다행히도 현재 영어 위키에서는 위 기사를 인용해 잘못을 교정하고 있습니다.
  • 연성재거사 2014/12/22 00:09 #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이런 분야에선 그 차이가 크죠. -_-;
  • 골든 리트리버 2014/12/22 01:29 #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특히 전쟁의 본질에 다루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가 확대됩니다.
  • 이명준 2014/12/22 02:14 #

    손자도 말했듯이 전쟁을 하는것은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것 보다 못하다고 했으니 전략을 연구하는 어느 성현이든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지 처음부터 빼들어야하는 수단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다들 말하죠
  • 골든 리트리버 2014/12/22 22:27 #

    본문의 주제는 손자의 주장과는 좀 다릅니다.
  • ㅇㅇ 2015/02/04 21:54 # 삭제

    확실히 번역도 교차 검증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원문을 직접 보는 것이 중요하구요.

    그런데 한국의 경우 일본을 통해 중역되어 들어온 단어와 개념들 덕분에 학계에서는 고생이 심했다죠. 웃긴건 이렇게 중역된 개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한자를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은건 재미있는 일입니다.
  • Esperos 2015/02/20 15:17 #

    오인용의 역사가 천 년을 넘는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사례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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